‘부활의 아침’은 현재적이다

담임목사 칼럼

‘부활의 아침’은 현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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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의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기독교 최대명절인 ‘부활절’이다.

 예수의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부활절이야말로 그 어떤 날보다 기쁜 날이다. 성탄절은 이미 상업화되었지만, 부활절은 아직 오염안된 무공해 축제일이다. 한국교회는 오늘 오후 잠실주경기장에서 10만 성도가 모인 가운데 부활절연합예배를 드린다. 설교는 조용기 목사가 맡았다. 특히 한기총과 KNNC가 공동주최로 처음 연합해 행사를 갖는다는데 의미가 있다. 환영할 일이다.

 예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건이다. 제자들이 확인하고, 군중이 목격했다. 의심많던 제자 도마도 직접 상처를 확인했다. 그리고 빈 무덤이 증거한다. 사실 군병들이 무덤을 지킨 이유는 제자들이 시체를 도적질해서 예언대로 살아났다고 떠들면 문제가 더 어렵게 되기 때문이었다. 결과론적으로 밤낮으로 무덤을 지켰기에 부활사실은 ‘절대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이들은 “육체부활이 과연 가능하냐”고 묻는다. 아인쉬타인은 에너지 보존법칙에서 에너지와 물질은 궁극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열역학 제일법칙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물질은 ‘상태’가 ‘변화’는 해도 절대로 소멸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사람의 육체가 썩거나 태워져 없어지는 것도 신체를 구성하고 있던 물질이 근본적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백질이 구성하고 있던 원소로 분해되는 것일 뿐이다. 이렇게 분해되었던 원소들이 하나님의 신비한 능력으로 얼마든지 다시 결합해 그 전의 육체를 형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부활은 과학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있던 것’을 ‘다시 있게’ 하는 것이 그 무엇 어렵겠는가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부활의 보증이 되셨다(요14:1-3). 사실 인간은 날마다 ‘죽음과 부활’을 연습하며 산다. 성경에 죽은 자를 잠자는 자라 하였다.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그것이 죽고, 부활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차 주님의 날에 ‘예수의 생명’이 있는 사람은 ‘생명의 부활’로, 없는 사람은 ‘심판의 부활’로 나아오게 된다고 했다. 예수부활은 죄용서와 함께 영과 마음과 생활 등 전인적인 구원에 대한 확증이다. 그러기에 ‘소망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실망과 낙심 속에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은 부활한 주님을 보고, 희망과 용기를 갖고, 벅찬 감격 속에 부활의 전령사가 되었다. 따라서 부활은 위기와 좌절이 가득한 오늘날 우리에게도 ‘능력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부활의 아침은 역사적이며, 현재적이다. 이러므로 역사 속의 사건으로만 이해돼서는 안된다. 오늘의 사건으로 승화시켜 개인과 민족의 고통을 극복하고, 창조적 변화가 일어나도록 하는 영광스러운 축제가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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