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작인생 되자!
경칩이 지나고, 봄기운이 완연한 작금, 농촌의 손길은 바빠졌다. 밭두렁을 태우고, 과수원지기는 잔가지를 쳐주기에 바쁘다. 도심에서는 새봄을 맞기위해 가로변 수목에 물세척 작업이 한창이며, 생육증진제를 살포하고 있다.
만물이 소생하고 기지개를 펴듯, 우리들도 신앙의 나래를 펼 때다. 수목들이 겨울내내 쌓인 먼지를 씻어내듯이 몸과 마음의 더러움을 씻고,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신앙과 삶을 푸르게 하려면 먼저 영적확고함이 있어야 한다. 나무로 말하면 뿌리를 깊게 하고, 집으로 하면 기초를 든든히 하여 세우는 것같다. 최근 전남 보성의 88세 추복순 할머니가 초등학교에 입학해 화제가 되었다. 할머니가 뒤늦게 입학을 결심하게 된 것은 성경을 읽기 위함이다. 매주 교회를 빠짐없이 나가지만, 글 배울 기회가 없어 ‘성경을 읽지 못하는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제대로 알고 믿으려는 자세가 참 바람직하다. 복음의 내용도 모르고, “믿습니다”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들도 새봄과 함께 더욱 성경을 가까이하여 절묘하신 하나님을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화초가 아름답게 피려면 좋은 토양이 있어야 하듯, 건강한 신앙과 삶을 위해서는 건전한 정신이 밑바탕돼야 한다. 최근 최 모 국회의원이 여기자를 성추행하여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제 정신있는 사람이라면 엄두도 못낼 일을 검찰간부 출신으로 3선 의원이 저질렀으니 충격과 경악을 금할 수 없다. 또 국무총리는 철도파업이 있던 3. 1절날, 그것도 의혹을 받고 있는 부적절한 골프를 쳐서 사퇴압력을 받고 있다. 이 모두가 본분을 벗어난 행동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형상을 마귀가 망가뜨렸다. 다윗도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시22:6)고 했다. 인간은 무시로 바리새적 경건의 너울을 쓰는 습성이 있다. 그 인격은 햇빛이 아니고 바람이다. 또 찌르는 칼이고, 독선의 광풍이다. 천진한 소녀에게도 죄악의 씨는 있고, 성자의 가슴에도 오만의 씨가 있다. 그래서 스스로 성자라고 여길 때 벌써 성자가 아니다. 어둠의 마귀는 누구에게나 다가와 이렇듯 ‘이성과 판단’을 흐리게 하고, 그 인생을 도적질한다. 그래서 성경은 현실을 무시하는 불안한 정신상태를 경계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라”(벧전 4:7)고 깨우치고 있다. 우리들은 ‘밤이 아닌 낮에 속한 사람’이다. 정신을 차리고, 언행심사를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거울임을 명심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넘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고후5;17)이 된다. 이러므로 우리 모두는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그리고 다작인생(多作人生)보다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걸작인생(傑作人生)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