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 12월을 사는 법
송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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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6 15:12
‘다사다난’이라고밖에 설명하지 못할 2021년이 저물어간다. 이때쯤 친구나 지인에게 가장 많이 듣던 말이 ‘한 해 가기 전에 한번 보자’였다. 송년회(送年會) 혹은 망년회(忘年會)의 때인 것이다. 망년회는 ‘한 해의 온갖 괴로움을 잊자’라는 부정적 의미가 강하니, 송년회 혹은 송년 모임으로 용어를 순화하자는 말도 들렸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송년회가 됐건 망년회가 됐건, 이를 핑계 삼아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이들과 만나서 이야기 나눈다는 것은 12월에만 누리던 큰 기쁨이었다. 올해 연말연시를 앞두고도 방역 당국과 의료계 종사자가 강한 우려를 표하는 것을 보면, 매년 이맘때 고조되는 송년회 욕망은 팬데믹의 위협을 넘어서는 듯하다.
이렇게 12월은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달이지만, 그리스도인은 이미 새해를 사는 중이다. 교회력에서는 크리스마스 4주 전 대림절 첫 주와 함께 새로운 해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교회력과 일상의 달력을 겹쳐놓으며 생긴 ‘타임 슬립(Time slip)’은 그리스도인만이 누리는 신비한 시간의 선물이다.
일반 달력에 따르면 새해는 1월 1일에 시작된다. 그래서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올 때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축제와 풍습으로 ‘송구영신’을 기념한다. 이때는 일 년 중에 밤이 가장 긴 동지가 이미 지나 밤이 하루하루 짧아지는 중이다. 사람들이 길어지는 낮을 경험하는 중인 만큼 새해가 풍기는 밝고 희망찬 인상과 잘 어울린다.
반면 교회력에서 새해는 11월 27일부터 12월 3일 사이 주일에 시작된다. 동지가 다가오며 어둠이 깊어지는 시점이다. 이 땅의 어둠이 커가는 중이지만, 그리스도인은 구세주의 오심을 기다림으로써 희망 안에서 이미 새로운 해를 살아간다. 교회는 매주 대림절 초를 하나씩 하나씩 더 밝힘으로써 어둠은 결코 빛을 삼키지 못한다는 것을, 그리고 어둠이 가장 짙었을 때 참 빛이 세상에 와서 사람에게 비춘다는 것(요 1:9)을 증언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에게 12월은 단지 한 해를 보내고 쓴 기억을 잊어버리는 송년 혹은 망년의 시기가 아니다. 대림절 4주 동안 우리는 어두움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빛을 신뢰하는 법을 배운다. 두 달력이 겹쳐지며 열어 보인 신비로운 이중적 시간은 구세주가 오신다는 약속과는 대조되는 세계의 상처 난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갈수록 짙어가는 어둠에 조급해져 자기방어적 환상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때에 참 빛이 온 세상을 비추리라 믿고 인내하게 이끈다. 대림절이 되자 구약학자 월터 브루그만은 이렇게 기도를 드렸다.
“주님, 우리는 기다림에 지쳤습니다. 우리는 냉소적인 세상에 살면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 안주합니다. 하지만 우리 삶의 진정한 주인은 당신임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사랑의 빛을 우리가 보기 한참 전부터 당신은 영원한 사랑으로 우리의 구원을 준비하셨음을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 옛날 연약한 아기의 몸으로 온, 만물을 새롭게 하는 당신을 기다립니다.”
주님을 기다림으로써 새로운 시간에 들어갔다는 것은, 모든 것을 무(無)로 돌리는 시간의 파괴적 힘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시간을 희망으로 채우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죽음을 향해가는 시간적 존재의 허무함이 아니라, 시간의 주이신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의 존재를 정의한다는 것을 상기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림절 기간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의 인류를 직접 찾아오셔서 빛과 생명을 나눠주셨듯, 연말의 들뜬 분위기 중에서도 어둠과 추위 속에 있는 이웃에게 다가가 밝은 빛과 따스한 온기를 전할 때이기도 하다. 이 뻔한 말로 글을 마무리하는 것은, 매해 12월이면 우리는 ‘지극히 작은 자’의 얼굴을 하시고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병들고 옥에 갇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어김없이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마 25:42~46)
김진혁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 교수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221891&code=23111413&sid1=m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