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중복음과 삼중축복

담임목사 독서보고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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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의 복음--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 인간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상실한 채 버림받고 저주받은 자녀들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종국에 가서는 영원히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죄악을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청산하심으로 구원의 터전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해 놓으신 그 구원의 터전을 믿음으로 점령해야만 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처럼 누구든지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시므로 우리 인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뀌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거듭남’, ‘중생’입니다.

◎성령충만의 복음--예수님을 믿고 중생한 후에는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깊은 신앙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중심에서 뜨겁게 체험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머리로만 알 뿐 심령 깊숙이 체험할 수 없는 것은 성령충만함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베소 교회에 가서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고 질문한 것입니다. 그 교회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령충만을 체험하지 못해 구원을 받았으나 생명력 있는 신앙 생활은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성령충만함을 받을 때 권능을 얻어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하게 증거 하는 충성된 증인(행1:8)이되며 성령충만을 통해 성령의 은사와 열매를 생활 가운데 풍성하게 나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활은 육체의 소욕을 이기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행하게 되므로 그리스도다운 성결한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축복의 복음--예수님을 믿으면 가난하게 살아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저주를 받아 가난하게 된 것도, 모두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생활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가난과 저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삶을 따르고자 스스로 가진 물질을 이웃에게 나누어주고 살아가는 청빈의 삶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분명히 모든 저주를 십자가에서 속량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 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8:9)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 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갈3:13~14)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풍성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성도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이제 하나님의 자녀들은 가난과 저주에서 놓여나 생활 속에서 풍성한 복을 받아,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사랑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신유의 복음--하나님은“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여호와 라파)”(출15:26)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 연약한 것을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다고 말씀하십니다.(사53:4)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의 병, 육신의 병을 치료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때문에 우리는 신유의 복음을 적극적으로 선포해야 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교회는 신유에 대해 오해하고 무시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신유사역이 복음 전파에 동반되어야함을 강조합니다(막16:17~18)

◎재림의 복음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살전4:16~17)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께 천국의 삶을 보장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준비해 두신 영원한 본향이 있음을 믿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들의 삶은 미래 지향적이며, 천국 지향적입니다. 말세를 사는 그리스도인은 구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재림하실 것을 믿고 소망합니다. 이러한 재림의 신앙이 그리스도인을 현실에서 유리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역사적 책임 의식을 소유한 건실한 시민이 되게 합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부활하여 살아있는 자들고 함께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며, 7년 혼인 잔치와 천년 왕국 시대를 지낸 후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영화로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오중복음이 참된 성경적 복음이라면 실생활에서 반드시 그 위대한 능력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복음의 적용이 바로 삼중축복입니다. 이 삼중 축복의 의미는 전인 구원의 결과로 다가온 축복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실 때 단순히 영혼만을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 전체와 육체까지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인 구원의 축복이야말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은 완전한 구원의 목적이며 성경의 근본적인 뜻입니다.

♧영혼의 축복(“네 영혼이 잘됨같이“)--그리스도인들은 먼저 영혼 축복의 휘장을 널리 펴야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용서받고 영생을 얻으며 의롭다함과 거룩함을 입고, 성령충만을 받아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영적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영적 휘장을 널리 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하기를 힘쓰고, 말씀 공부하기를 힘쓰고 하나님께 예배드리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 세 가지를 떠나서는 결코 영혼의 휘장이 넓혀질 수 없습니다. 적어도 매일 한 시간 이상 기도하고 끊임없이 말씀공부 하고 항상 하난님께 예배드림으로써 영혼의 휘장을 한없이 넓게 펼쳐야 할 것입니다.

♧생활의 형통의 축복(“범사에 잘되며”)--뿐만 아니라 생활의 형통의 휘장을 널리 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중심에 서서 정직, 성실, 근면 할 때 큰복을 주십니다. 오늘날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도움을 청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복을 받아 형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생활의 복을 누리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육체건강의 축복(“강건하기를 간구 하노라”)--나아가서 육체의 건강의 휘장을 널리 펴야 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죄와 마귀, 과식과 과로, 비위생적인 생활로 인하여 온갖 병을 얻어 고통 당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리스도인들도 육체의 건강의 휘장을 펴기 위해 죄를 멀리하고 마귀를 쫓아내며 과식을 피하고, 과로를 피하며 위생적인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와 더불어 하나님께 “늘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건강보다 더 귀한 보배는 없습니다. 이러므로 여러분은 건강할 때 이 건강을 유지시켜 달라고 끊임없이 기도 해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병이 들면 말할 필요 없이 죄와 불순종을 회개하고, 치료함을 받기 위해 철야하고 금식하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건강의 휘장을 널리 펴서 지치지 않으며 나약해지지 않는 활력을 갖고 이 땅에 살 동안 예수님을 위해 열심히 충성해야 할 것입니다.

영혼의 축복은 오중복음의 중생의 복음과 성령충만의 복음, 그리고 재림의 복음과 상관관계를 가진다. 생활 형통의 축복은 축복의 복음과 상관관계를 가지고 육체의 건강의 축복은 신유의 복음과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인류를 구원하셨는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들에게만 구원의 역사가 있다.

즉, 우리는(인류는) 구원의 대상이 되고 그것을 (그 진리를)믿든지 안믿든지 양자택일을 해야만 한다. 우리는 절대 타락존재이기 때문에 그 만큼 하나님은 구원의 은혜는 크다.,,,순복음은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 삽자가로부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세주로 영접하는 것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선악과의 말씀을 어긴 인류조상인 아담의 죄는 온 인류에게 유전되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사람은 죄로 인한 죄책과 허무와 무의미와 죽음이라는 병에 몸부림쳐야 했습니다. 인류가 이 같은 비참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죄 값을 청산하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다시 확립하는 길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후손들은 모두 죄 가운데 태어났으므로 그 누구도 죄 값을 지불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공의의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일방적으로 제해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누군가 죄 없는 사람이 인간의 죄 값을 치루기 위해 죽어야만 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오셔서 인간을 위해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하나님께 속죄 제사를 드리신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보라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말합니다." 단번에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루신 이 속죄는 세상 끝날 까지 언제나 그의 택하신 자녀들 즉,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들에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피 흘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이루신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갈보리 십자가의 신앙은 복음의 중심이요 핵이며, 순복음 신앙의 기반이고 출발입니다.

십자가아래에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의 은총에 들어간 사람은 이제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핍박과 환란과 고통이 있을지라도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위해 오직 기도에 힘쓴 결과 오순절 날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겁쟁이가 용감한 자로, 무기력한 자가 능력 있는 자로, 그리고 말못하던 자가 말을 잘하는 자로 변화되어서 복음을 전하러 밖으로 뛰어 나갔습니다.

제자들은 성령의 충만으로 새롭게 변화되어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능력으로 예루살렘 시가지를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변화시켰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복음은 유대와 사마리아와 로마를 거쳐 오늘날 전 세계로 전파되었습니다.

오순절 날에 임하신 성령의 충만하신 역사가 그때로부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우리와 함께 합니다. -아멘-

순복음은 이러한 성령충만한 초대교회의 신앙을 오늘날 우리의 신앙 생활에 재현시키고자 하는 신앙입니다.

즉, 무기력한 신앙을 생동감 넘치는 생활화된 신앙으로 바꾸고, 성령의 능력과 은혜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사도적 신앙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권능을 받게 될 때(행1:8) 예수님의 산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주의 종들을 파송하여 선교 일선에 서게 하고 후방에서 일선에 나선 선교사를 기도로, 믿음으로, 물질로 후원해야 합니다.

이렇게 세계를 복음의 불로 밝힐 때 주님 오시는 날은 그만큼 빨라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와 같은 선교의 비전은 개개인 성도의 전도하는 신앙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 거듭나고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해진 성도는 그가 체험한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

주님의 마지막 분부이신,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는 말씀대로, 땅 끝까지 전하는 선교의 신앙이 곧 순복음의 신앙입니다.

순복음의 신앙은 위에서 말씀드린바 "갈보리십자가의 신앙으로 출발하여 성령충만함을 받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라 모든 인생을 살리시고 복 주시기 위하여 이생들의 죄와 지리병과 저주와 죽음을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그 흘리신 피로 이 모든 것을 다 청산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되고 복 받고 살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잘못된 길을 갈 때에는 사랑의 채찍을 드십니다.(히12:5~13)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심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구원하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기를 원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겔 37:23)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받은바 축복을 나누며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인간이 죄를 짓기 이전에는 질병도 죽음도 없었지만,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은 후에는 모든 인간이 죽고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고 말았습니다.(창2:16~17, 3:19)

이와 같이 흙으로 돌아가는 죽음이 시작이 곧 육신의 질병입니다. 질병의 근원은 죽음을 가져오게 한 죄에 있습니다.

즉, 병의 뿌리가 죄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죄 값을 다 청산한다면 사망의 세력인 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죄를 해결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병에서 해방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를 위하여 죄를 대속 하시고, 그 결과 영혼의 구원뿐만 아니라 우리의 병도 고쳐주시기 위함입니다.(사53:5)

그러므로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시인한 사람이면 누구든지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된 원죄에서 해방이 되며 아울러 육체적인 질병과 정신적인 질병에서도 자유 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원이라는 말에는 치료의 개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다는 것은 단지 죽은 후에 천국에 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현세적인 생활에서 건강한 삶을 사는 것과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도 구원의 내용에 포함됩니다.

죄의 결과로 나타나는 질병과 더 나아가 질병으로 인해 다가오는 슬픔까지 모두 대속 하셨습니다. 이러한 치료의 역사는 성도들이 죄를 회개하고 병 고침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약5:15~16), 하나님께서 우리의 병을 고쳐주신다는 믿음 위에 굳게 서서 약속의 말씀을 준행 할 때 (출15:26) 나타납니다.

순복음 신앙은 죄를 사하시고 구원을 주실 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병을 짊어지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신앙입니다.

어려운 세상 가운데서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성령으로 충만한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약5:7~8)

최후의 심판과 함께 믿는 자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믿지 않는 자는 불과 유황의 못으로 옮겨져 거기서 영원히 거하게 될 것입니다.

순복음의 신앙은 이와 같이 예수님의 재림과 저 영원한 나라 신천신지을 소망하며, 이 땅에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하여 주를 섬기는 종말론적 신앙입니다.

순복음 신앙은 나 자신만 잘 되면 그만 이라는 이기적인 신앙이 아닙니다.

순복음 신앙은 하나님중심의 신앙이며, 다른 사람을 위한 이웃 사랑의 신앙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나누어주는 신앙은 순복음 신앙의 열매에 해당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누어주는 신앙이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복을 먼저 하나님께 드리며, 또 이웃에게 나누어 구제하는 신앙을 말합니다.

신앙 생활을 할 때에 복과 구제는 불과 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순복음 신앙은 갈보리 십자가의 신앙에서 출발하여,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한 신앙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복을 받아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신앙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복을 끊임없이 이웃에게 나누어줌으로써 더욱 풍성하고 생명력 있는 신앙의 열매를 맺기에 힘쓰고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순복음 신앙은 지식과 감정만의 신앙이 아닌, 생활전체에 복음의 뜻과 능력이 철저하게 적용되고 배어드는 것이고,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사는 순성경적 신앙인 것입니다.

교회의 성장과 부흥의 비결은 성령님의 절대적인 도우심과 역사에 있다. 성령님의 역사가 처음이요 나중이 되어야 한다.

복음을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온전히 믿고 실천하도록 하는 메시지를 선포하려고 노력해야합니다.

순복음이란? 성경 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조금도 약화시키지 않고 충만하게 적용하고 생활화하자는 것이며, 삼중축복이란 구원의 어느 일면만을 강조하지 않고 우리의 영, 혼, 육 삶의 전 영역에 적용시키고자 하는 전인적 구원의 도식적 표현일 뿐이다.

기독교의 본질인 복음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이것은 전도를 나갔을 때 그 목적이 무엇이며 무엇을 전해야하는지를 확고히 할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

복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기쁜 소식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성경에서 찾아본다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예수 그리스도도 공생애 사역 초기부터 복을 전파하였는데 그 복음의 주체는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하나님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이 땅에 임하였고, 오늘날 성령님을 통해 우리가운데 임재하고 있으며, 예수님의 재림 때에는 구체적인 구원의 완성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마음이 상한 자를 위로하시고 평안을 주심으로 다시는 눈물과 탄식과 애통이 없는 평화의 천국을 체험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죄 사함의 은혜와, 종말론적 구원의 복과, 의와 희락과 평강이 가득한 천국 복음인 것입니다.


복음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떠한 경우가 있는가를 보면 우선 복음은 영혼만을 구원해준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진 경우이다.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도외시하고 있다. 이것은 지극히 내세 지향적이고 이율배반적이며 복음의 일부분만을 바라본 결과입니다.

육신을 입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한 우리는 가정과 사회와 경제생활을 무시하고 살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 영적인 구원을 보장해 주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현실적인 삶의 모든 영역에도 구원의 은혜와 축복의 손길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윤리와 도덕의 규범으로 해석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기독교를 윤리적인 종교로 격하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인간적인 윤리와 도덕적인 규범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윤리와 도덕이 살리지 못하는 영혼과 인생의 삶에 생명을 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은 윤리 이상이요, 도덕 이상인 생명의 메시지입니다.

복음을 새로운 율법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복음의 내용을 교리적, 지식적으로 받아들여 그것을 인간적인 노력으로 지켜나가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일에 교회에 나가고 예배에 참석하고 헌금을 드리는 것이 곧 예수를 믿는 전부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형식과 의식과 율법 중심의 종교행위를 중요시하며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죄책과 정죄 의식으로 괴로워합니다. 또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정죄하는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복음은 딱딱한 교리주의가 아니라 말씀으로 변화를 받고 그리스도의 진리로 참 자유를 누리며 살게 하는 삶의 원동력입니다.

복음을 반 율법적으로 보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복음이 율법을 폐하러 왔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주님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러 오셨습니다.

반 율법주의는 율법에 대해 이러한 복음적 입장을 거부하고 방종 하는 행동을 정당시하는 잘못된 견해입니다.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반 율법주의는 도덕적, 윤리적 방종으로 사람들을 오도하는 잘못된 견해입니다.

복음을 학문의 대상이나 사회개혁의 원리로 이해하는 경우는 복음을 이성 아래 두고 합리적 이론이나 과학적 지식으로 이해 할 수 없는 내용은 삭제하거나 무시해 버립니다.

종교철학이나 종교사상으로 이해하려하는 경향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영혼을 구원하려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이 땅에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사회가 바로 될 때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그러나 먼저 인간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변화되어야 합니다. 복음으로 변화된 사람만이 새로운 사회와 제도를 이룩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샤머니즘으로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복음을 무속 적인 민간 신앙으로 여긴 다는 것입니다. 즉 기복신앙으로 믿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자신의 영달과 안일을 위해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이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복은 진정한 회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중심에서 그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신앙을 가졌을 때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은 살아 계신 하나님도,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 말씀도, 성령님을 통한 거룩한 삶도 없는 샤머니즘과는 전혀 다릅니다.

복음은 막연하고 거짓된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기복 신앙을 산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필요와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그 본질로 하고있는 것입니다.,,,이 책을 처음 읽어 내려가면서 전도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전도할 때 오중 복음과 삼중 축복을 내세워서 설명을 해주면 전도 대상자들에게 설득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성령이 스승 되시고 역사 하시고 도와 주셔야 하는 것이 일순이지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말씀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점에서 책을 읽으면서 지루한 점을 느끼지 못했으며 이 글들을 어떻게 전도할 때 적용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읽게 되었다.

책 내용 중에는 제가 알고있는 내용이 더러 있으나 아는 내용이라고 해서 결코 소홀해하거나 넘어 가버리면 그것은 말씀을 머리로만 아는 것이요 마음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 서 읽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보는 말씀 매번 보는 말씀이라도 제게는 늘 새롭게 다가오고 큰 은혜를 받습니다.

이 책의 특징은 매 챕터 마다 “확인해 봅시다“ 라고 해서 주관식형으로 질문에 대한 답을 하게끔 장이 마련되었다. 책을 읽으며 말씀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그래서 더욱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갖을 수 있게 하고 그로 인해 읽는 중에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이러한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온 인류가 온 세계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게 되면 주님이 오신다는 말을 들었는데 전쟁이나, 자연 재해로 인한 세계인구의 생존자 10명이 남는다면 그리고 그 생존자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주님이 오신다는 말인가?

진정 순복음 신앙이 나누어주는 신앙이 되어야한다. 지금 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는 것은 구령의 열정을 쏟기 위해 신앙, 혹은 신학의 정립을 바로 세우기 위함임을 알고 있다.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나눠주는 것에 많이 인색한 내 자신을 발견 할 때가 많다.

나누어주는 신앙.... 남을 위해 남을 위한 먼저 생각하기 보다 내 것을 먼저 챙기고 내것을 먼저 위해서.... 그리고 남는 것을 남에게 주는 행위..... 그런 나에게 이 책에서는 생명력있는 열매를 풍성히 맺기 위해 이웃에게 끊임없이 나누어주라고 말하고 있다.

내가 하나님을 만나 변화되고 새롭게 되었듯이 이웃을 구제함으로 예수님의 사랑은 품고 도와 주고 나눠줌으로서 예수님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책을 통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삶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은 곧 삶 가운데 성령님을 사모함으로 성령님이 나와 동행(함께)하고 그로인해 복음의 생활화가 되는 것이 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복음에 대한 잘못된 생각에서는 나도 그렇게 생각 해 본적이 있을 때가 있었고 내 친구가 그렇게 주장했던 기억이 나서 더욱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오중복음이 지금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복음의 역사이고 그 역사를 통해 삼중축복의 삶을 영위해 가는 나를 소망한다.

이러한 삶을 모든 사람들이 누리는 그날까지 온 천하 만민에게 전파하는 증인이 되고자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사용되어지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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