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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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8 17:10
-,,,탈냉전시대의 세계에서는 기독교문명과 이슬람문명의 운명적 충돌을 피할 수 없다는 정치적 예언으로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미국의 정치학자 헌팅턴(77). 그가 이번에는 지구적 스케일의 ‘문명충돌론’ 대신 소박하게도 ‘사랑하는 조국’의 붕괴 가능성을 우려하는 ‘미국 붕괴론’을 내놓았다.
아마도 9·11테러가 집필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것같다. 저자가 보기에 200년 넘게 지속되어온 자유·평등·정의, 개신교적 신앙과 같은 미국적 가치들은 20세기 말에 이르러 점점 허물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18세기와 19세기에 노동과 전쟁으로 탄생했고, 20세기에 양차 세계대전으로 강화되었던 미국의 국가 단결과 국가 정체성은 훼손되고 있다.”
이처럼 느슨해진 미국적 가치는 미국 붕괴를 목표로 하는 알 카에다의 테러 이후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는 역설로 이어졌다. “미국은 자신들의 존재를 위협하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때 국가 정체성, 국가의 목표, 그리고 공동의 문화가치를 갱신해 붕괴와 해체를 연기시키고 중단시킬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헌팅턴이 이 책에서 말하려는 핵심이다.
저자는 미국이 지켜야 할 미국적 정체성에 대해 “미국은 식민지 시대(1608∼1774)의 북아메리카에 영국인들이 이주해 세운 종교, 정치, 언어적 전통에 뿌리를 둔 나라로서 단연코 ‘앵글로 프로테스탄트’ 국가라는 것”이다.
미국인들을 단결시키는 강력한 유대감의 원천이 이것이다. 그러나 공동체 집단들의 섞임과 나뉨, 교류와 분리라는 변증법적인 원리를 미국도 피해갈 수 없었던 걸까. 헌팅턴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이민자들이 엄청나게 몰려오면서 미국의 정체성은 크게 흔들렸다. 공동(空洞)화되어가는 국가 정체성의 자리에 인종, 민족, 성 같은 것들이 헤집고 들어왔다.
이민자라고는 하지만 헌팅턴이 지목하는 부류는 멕시코계 히스패닉이다. 미국에 좀처럼 동화되지 않고 자신들의 문화와 언어(스페인어)를 고수하는 이들 때문에 ‘미국적인 것’의 순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설명이 제법 장황하다. 앵글로 문화와 히스패닉 문화간의 충돌로 몰고가는 형식이다.
쿠바인은 마이애미로, 도미니카인과 푸에르토리코인은 뉴욕으로 몰리는 현실, 그리고 2010년 로스앤젤레스 주민의 60%를 히스패닉이 점유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만큼 급증하는 멕시코인 이민 등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또 그는 19세기 중엽의 멕시코 전쟁을 통해 멕시코로부터 빼앗은 텍사스, 뉴멕시코, 애리조나, 캘리포니아주 등에 멕시코인 이민이 집중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한다. 그는 이를 미국 서남부에 대한 멕시코인의 영토수복 운동으로 보고 이 지역의 멕시코 식민지화 가능성까지 우려한다.
특히 로스앤젤레스나 뉴욕, 마이애미처럼 대통령 선거인단의 수가 많은 큰 주의 대도시들이 연방정치 판세에 끼치는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그의 도발적 분석은 전통적인 미국의 종말을 예언하는 ‘미국 묵시록’이나 마찬가지다.
지나친 소수인종 차별 철폐 정책과 스페인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병행하려는 이중 언어정책에 대한 그의 비판도 ‘미국을 붕괴시키는 데 앞장선 진보주의자’들에 대한 정치적 비판이며 항변이다. 리버럴한 엘리트들과 실제로 미국의 다수를 차지하는 보통 국민 사이에 존재하는 신념의 괴리를 그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국의 국가 정체성을 희석시키는 존재가 히스패닉만은 아니다. 지구촌 시대이고 이익창출에 국경이 없는 시대이다 보니 국가라는 울타리를 벗어던지려는 사람들이 미국 내에서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구적 수준의 활동이 확대되면서 미국에 본사를 둔 기업들은 점차 덜 미국적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한 예이다.
대영제국이 와해되고 소련이 해체되었듯이 미국도 언젠가는 쪼개진다는 역사의 순리를 헌팅턴은 알고 있다. 다만 학자이면서 자칭 애국자인 그는 그 시기를 늦추고 싶어한다. 걱정스런 것은 방식이다. 불행히도 초강대국 미국은 전쟁을 하는 동안 국가의 권위와 자원이 강화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꿰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의 국가 정체성이 극대화된 기억을 갖고 있는 한 미국의 일방적 전쟁은 이라크가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런 상상을 허용하고 있다. 이 책이야말로 평균적인 백인 미국 사회의 세계관을 보여 주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아마도 9·11테러가 집필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것같다. 저자가 보기에 200년 넘게 지속되어온 자유·평등·정의, 개신교적 신앙과 같은 미국적 가치들은 20세기 말에 이르러 점점 허물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18세기와 19세기에 노동과 전쟁으로 탄생했고, 20세기에 양차 세계대전으로 강화되었던 미국의 국가 단결과 국가 정체성은 훼손되고 있다.”
이처럼 느슨해진 미국적 가치는 미국 붕괴를 목표로 하는 알 카에다의 테러 이후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는 역설로 이어졌다. “미국은 자신들의 존재를 위협하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때 국가 정체성, 국가의 목표, 그리고 공동의 문화가치를 갱신해 붕괴와 해체를 연기시키고 중단시킬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헌팅턴이 이 책에서 말하려는 핵심이다.
저자는 미국이 지켜야 할 미국적 정체성에 대해 “미국은 식민지 시대(1608∼1774)의 북아메리카에 영국인들이 이주해 세운 종교, 정치, 언어적 전통에 뿌리를 둔 나라로서 단연코 ‘앵글로 프로테스탄트’ 국가라는 것”이다.
미국인들을 단결시키는 강력한 유대감의 원천이 이것이다. 그러나 공동체 집단들의 섞임과 나뉨, 교류와 분리라는 변증법적인 원리를 미국도 피해갈 수 없었던 걸까. 헌팅턴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이민자들이 엄청나게 몰려오면서 미국의 정체성은 크게 흔들렸다. 공동(空洞)화되어가는 국가 정체성의 자리에 인종, 민족, 성 같은 것들이 헤집고 들어왔다.
이민자라고는 하지만 헌팅턴이 지목하는 부류는 멕시코계 히스패닉이다. 미국에 좀처럼 동화되지 않고 자신들의 문화와 언어(스페인어)를 고수하는 이들 때문에 ‘미국적인 것’의 순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설명이 제법 장황하다. 앵글로 문화와 히스패닉 문화간의 충돌로 몰고가는 형식이다.
쿠바인은 마이애미로, 도미니카인과 푸에르토리코인은 뉴욕으로 몰리는 현실, 그리고 2010년 로스앤젤레스 주민의 60%를 히스패닉이 점유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만큼 급증하는 멕시코인 이민 등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또 그는 19세기 중엽의 멕시코 전쟁을 통해 멕시코로부터 빼앗은 텍사스, 뉴멕시코, 애리조나, 캘리포니아주 등에 멕시코인 이민이 집중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한다. 그는 이를 미국 서남부에 대한 멕시코인의 영토수복 운동으로 보고 이 지역의 멕시코 식민지화 가능성까지 우려한다.
특히 로스앤젤레스나 뉴욕, 마이애미처럼 대통령 선거인단의 수가 많은 큰 주의 대도시들이 연방정치 판세에 끼치는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그의 도발적 분석은 전통적인 미국의 종말을 예언하는 ‘미국 묵시록’이나 마찬가지다.
지나친 소수인종 차별 철폐 정책과 스페인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병행하려는 이중 언어정책에 대한 그의 비판도 ‘미국을 붕괴시키는 데 앞장선 진보주의자’들에 대한 정치적 비판이며 항변이다. 리버럴한 엘리트들과 실제로 미국의 다수를 차지하는 보통 국민 사이에 존재하는 신념의 괴리를 그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국의 국가 정체성을 희석시키는 존재가 히스패닉만은 아니다. 지구촌 시대이고 이익창출에 국경이 없는 시대이다 보니 국가라는 울타리를 벗어던지려는 사람들이 미국 내에서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구적 수준의 활동이 확대되면서 미국에 본사를 둔 기업들은 점차 덜 미국적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한 예이다.
대영제국이 와해되고 소련이 해체되었듯이 미국도 언젠가는 쪼개진다는 역사의 순리를 헌팅턴은 알고 있다. 다만 학자이면서 자칭 애국자인 그는 그 시기를 늦추고 싶어한다. 걱정스런 것은 방식이다. 불행히도 초강대국 미국은 전쟁을 하는 동안 국가의 권위와 자원이 강화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꿰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의 국가 정체성이 극대화된 기억을 갖고 있는 한 미국의 일방적 전쟁은 이라크가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런 상상을 허용하고 있다. 이 책이야말로 평균적인 백인 미국 사회의 세계관을 보여 주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